시민운동과 시민불복종운동

 

시민운동과 시민불복종운동

1. 시민불복종은 시민운동의 한 극단적 형태이다.

시민운동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정부와 기업과 함께 시민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시작된 자발적인 운동이다.

시민운동은 정부와 정치인들을 감시하고，그들이 정의로운 법을세우고 나라를 다스리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정의롭지 못한 법이나 제도를 비판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준법의 테두리안에서 전개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법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불복종의 형태를 지닌다.

시민불복운동은 정당하지 못한 법이나 정부의 정책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행동을 통하여 그것을 개정하고자 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 불복종운동은 그 자체가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기에 국민의 여론에 호소하여，정부나 정치가에게 압력을 가함으로 국민적 힘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현재의 법이나 질서보다는 정의가 상위의 법이고 그것을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의 흑인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목사 민권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이 운동은 미국에서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전개되었다.

2. 시민불복종운동의 예

시민불복종이란 단어를 제일 먼저 사용한 19세기 미국 소설가 행 데이비드 소로우(1817- 1862)는 1840년대 후반에 정부가 주도하는 멕시코전쟁을 반대하면서 인두세 내기를 거부혀하였다. 이 일로 감옥에 투옥된 그는 출소한 뒤，유명한 시민불복종 (1849) 이란 글을썼는데，그는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으며，양심에 따라 행하는 자를 감옥에 집어넣는 사람에 대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감옥에 들어가는 일 밖에 없다고 하였다. 1850년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노예 폐지론자들은 도주 노예상환법을 거부하면서 숨어 들어온 노예를 넘겨달라는 노예 추적자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는 모두 양심에 따라 국법을 거부한 일종의 시민불복종이요 양심적인 반대운동이었다. 양심에 의한 대규모의 시민 불복종의 예는 1950년 중반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민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내에 비어 있는 백인 전용 좌석에 앉아 일어나기를 거부한 일로 시작된 소위 버스 보이코트 사건은 킹 목사의 주도하에 조직적인 시민불복종운동으로 발전하여 전개되었다. 킹 목사는 인종을 차별하는 법은 지킬 수가 없으며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버스 타기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그 일로 투옥되었다. 이 운동은 미 전역의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켰고，결국 국민적 여론을 둥에 업고 인종 차별법을 폐지하게 만들었다.

시민불복종운동은 불의한 법과 제도에 대항하여 국민의 인권을 신장하는데 크게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민불복종운동은 동기야 어찌 되었든 사회를 구성하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준법의식을 희박하게 만들뿐만 아니라，나아가 사회를 무정부적인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에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렇다면 과연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인 신자는 정부의 권위에 대항하고 법을 지키기를 거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3. 시민불족종운동과 성경의 가르침

성경에 시민불복종운동과 같은 예는 더러 있다.

1) 애굽의 히브리 산파가 히브리 여인이 남아를 출산하면 다 죽여 버리라는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명령을 거부한 것 이라든지(출 1:15-22)，

2) 에스더가 국법을 어기고 왕의 허락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왕 앞으로 나아간 것 이라든지(에 4:16)，

3) 베드로가 예수 이름을 전하지 말하는 산해드린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된 것(행 4:13-5:18)은 신앙양심에 따라 국법을 범한 양심적인 반대 운동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종교적인 이유와 상당히 관련된 경우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내릴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행 5:29). 그러나 신앙적인 문제가 아닌 정부의 정책이나 법조항 문제로 인하여 정부에 불복종하고 법을 거스를 수 있는가? 어떤 개개의 법이나 정책이 정의롭지 못한 경우는 어떠한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법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의 법은 때로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반영하기보다 인간의 탐욕을 제도화하고 영속화 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법은 때로 정의롭지 못하게 제정되어 신적인 정의와 선을 거스릴 개연성이 있다. 이런 경우에 법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신 도덕 기관인 양심과 충돌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에 따라 이 법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법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세우신 신적인 법 아래 놓여있고 그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법이 편벽되고 공정하지 못한 내용을 규정해 놓았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신적인 법에 기준해서 이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신학적인 입장에서 본다면，그리스도인들은 시민불복종운동이 어느 정도의 요건과 기준에 부합된다면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운동이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인정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준과 요건은 무엇인가? 크게 다섯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시민불복종은 불복종하려는 특정한 법이나 정책이 국민에 의해 공정하지 못하거나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받아야 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불복종운동은 법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오히려 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도덕적인 행동으로 인식될 수 있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킹 목사가 몽고메리 시의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항하여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여 성공을 거둔 것도 인종차별적 좌석 분리법이 정의롭지 못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정당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둘째, 시민불복종은 특정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최후의 방안이어야 한다. 이 운동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의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인 노력을 다 하고 그것이 소용이 없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불복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국민적인 인식과 공감이 필요하다.

셋째，시민불복종운동은 반드시 공개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불복종운동을 전개하는 시민이나 단체는 이 운동을 반드시 정부와 동시에 일반 시민에게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왜 법을 어기면서까지 불복종운동을 하는지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법이나 정책이 무엇이며，그것이 왜 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과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

넷째，시민불복종은 비폭력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 원리적인 면에서，시민불복종운동은 어떤 특정한 법을 거부하지만，기본적으로 법을 존중하고 정당한 법 체계를 세우려고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폭력은 용납 할 수 없다. 또 한편 전략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그렇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은 국민들에게 자기들이 불복종하려는 정부나 제도보다 더 도덕적임을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해서는 더욱 곤란하다. 폭력을 통한 개혁과 개선은 도덕적인 정당성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섯째, 시민불복종에 참여하는 사람은 법이 정해 놓은 형벌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불복종운동을 하고 체포와 구속당하는 것은 운동 참여자가 양심에 따라 어떤 개별적인 특정한 법을 어겼지만，법을 어기면 마땅히 처벌을 받는다는 법 질서를 존중하고 부인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마틴루터 킹 목사는 버스 보이코트 운동을 주동함으로 인하여 기꺼이 감옥에 갇혔고，헨리 소로우 역시 그것을 감내하였다. 그럼으로 오히려 대중의 시선과 국민의 여론의 집중을 받을 수 있었다.

4. 그리스도인의 영성과 사회적 행동

그리스도인은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과 정책을 시행할 때 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사회 정의를 억누르는 법과 제도를 유지하고 시행할 경우에도 이에 저항할 수 있고，만약 합법적인 개선작업이 열매가 없을 때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런 일을 전개하거나 참여하고자 할 때 믿지 않는 자와는 달리 먼저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상황을 바르게 분별할 수있는 안목과 지혜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빌 1:9, 롬 12:1-2). 성령의 인도와 공동체의 조언을 통해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와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판단이되면 용기 있게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불의를 교정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예상되는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러한 불복종운동에 참여하는 행동은 경건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과 영성은 개인의 삶과 내면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의 복지 중진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불복종은 때로는 기독교의 참된 경건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자 광장이 될 수 있다.

5. 개인 그리스도인과 단체 교회의 정치적행동

그러나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달리 교회는 다양한 정치적인 견해와 입장을 가진 성도들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사회윤리학자 존 베넷은 교회는 기본적으로 신자가 신앙 양심에 따라 정치가들과 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형태의 간접적 정치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개선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교회가 직접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교회는 교회의 이름으로 개선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하거나 직접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때도 물론 개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교단 총회나 교회연합 기구의 이름으로 하고 그렇게 할 때 보다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극단적인 상황 외에는 삼가야만 할 매우 조심스런 방법임을 부언했다. 교회는 교회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마지막 상황까지，설교와 교육을 통하여 신자가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사회의 불의를 지적하고 개선하기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직접적인 행동을 고려할 때는，이 시점이 교회가 선언서를 발표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를 매우 신중하게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잘못하면 자칫 교회가 일종의 정치적인 집단으로 비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접적인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 명심해야 할 것은，교회는 어떤 정치적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정당이나 이익 집단의 정치적인 행동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 집단이나 단체의 주장과 행동이 교회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할지라도, 그 단체나 당을 지원하는 듯한 발언을 삼가야 하는 것은 교회는 정치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각하여 전개한 부패 정치인과 무능 정치인에 대한 정보 공개와 이들에 대한 낙선 운동은, 비록 다른 평가도 있지만 시민 의식의 성숙과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건으로 역사에 평가될 듯하다. 시민으로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를 지지했고 실제로 이 불복종운동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정당하지못한 선거법에 대한 부분적인 개정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21세기초에 전개된 시민불복종운동을 통하여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새로운 세기의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앞으로도 공공적인 면으로 표출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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