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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가장 멸시받는 나라에서 가장 비천한 동네의 비천한 목수로 오셨다.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훈련이나 가르침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이같은 일은 이제껏 결코 변한 일이 없었고 마지막 날까지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주님은 사람들의 열매를
보는 대신 그들이 갖고 있는 신임장들, 그들이 어느 신학교나 성경학교에 다녔다든가, 심지어 누가 그들을 안수하였는가로 사람들을 알아보는 교회의
경향을 바야흐로 심판하실 것이다. 이같은 속임수야말로 아직도 교회에 지배적인 과오와 어두움의 상당한 부분을 끌어들인 길잡이가 됐다. 주님은 그같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하셨고 주님의 길이 처음부터 이와는 정반대 됨을 증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아마도 참된 사도적 비젼을 가장 위대하게 종합한 말 가운데서 설명했듯이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 가노라"(빌3:13-14).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내용이시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 참된 사도적 사역을 하는
자들을 나타내는 현상이 될 것이다. 즉 참된 사도적 사역은 자기 비젼의 초점을 항상 "한가지 일", 성부의 자기 아들에 대한 사랑과 모든 사람을 주님
안에서 온전히 드리는 일에 둘 것이다.
앞으로 교회에서 겸손이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복종이나 마찬가지로 겸손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늘 같지는 않다. 불안은 재빨리 오만방자함으로 바뀔 수
있으며 이로서 주변 상황과 두려움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종종 보이는 것이다. 불안이 권세와 섞일 때 몇몇 역사상 가장 오만 방자했던 행위로 나가게 했다.
독재자들이 변태적인 자기보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학대하였다. 그러므로 불안은 우리의 주의를 우리 자신에게 두도록 하는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하나님에게 자기를 두는 것이다.
지식있고 말에 능하며 정력적인 연기자들이나 연사들이 큰 무리를 모으는 것을 보고 놀라움으로 압도되거나 고무를 받는 대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비록 우리가 큰 무리를 모아 하나님의 뜻을 이룸으로서 우리의 사역에 큰 성공을 이룬다 해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누리고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될 때 가장 쓰러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알아야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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