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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왔을 때 예수님은 산으로 피하셨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가 고귀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실상 성경에 기록된 것 중 가장 주제넘은 행위의 하나였다. 인간에 불과한 자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왕으로 삼는다면 다스리는 자가 누가 될 것인가? 예수님을 왕으로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은 왕으로 나신 분이셨다. 주님의 일을
하는 영적 권세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권세를 사람들로부터 얻는다면 하나님이 아닌 바로 그 사람들이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능력과 권세를 갖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주 원인이다. 우리는 주님의 멍에 대신 사람의 멍에를 메어 오고 있다. 한 사람이 갖는 참다운 영적
권세는 오직 그의 내면에서 얼마나 왕이 다스리시고 계신가에 좌우된다.
교회가 참으로 선지자적인 권세로 행할 수 있기 전에, 교회는 엘리야가 섰던 자리에 서야만 한다. 그가 처음 아합왕에게 나타났을 때 그가 한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내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왕상17:1)였다.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서 있지 않다고 한 말은
그가 아합이 인간에 불과함을 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엘리야는 바로 살아계신 주님 앞에 서 있었으며 그의 삶은 주님 앞에서였지 사람 앞에서가 아니였다.
그와 똑같은 교훈을 터득하기까지 주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능력과 권세를 맡기실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하늘을 닫게 하고 하늘에서
불을 내릴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엘리야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모든 초점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사도바울이 설명한 대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갈1:10). 엘리야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과 사람의 인정을 혼돈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았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을 사랑해야할 필요성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으로 곧잘 혼동해 왔다. 이는 교회를 가장 부패하게 만들어 온 잘못된
생각 중의 하나이다.
바울을 사도로서 위임한 것은 그 당시 로마제국에 격노와 반대를 불러 일으키게끔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생각지도 않고 그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정사와 권세를 정면으로 도전해 나갔던 것이다. 로마 정부의 관원들이 바울이 세상을 뒤엎고 있다고 외칠 때에 이는 사도적 설교의 능력을 정확
하게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같은 사도적 설교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흔들고 그들로부터 가장 맹렬한 분노를 살 것이다. 사람과 귀신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참다운 선행 요건이다. 사도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의 인정을 구할 것인가 즉 하나님의 인정인가 사람의 인정인가에
대한 결단이 우리 마음 속에 있어야만 한다.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충동이 메시지의 힘을 앗아가고 아울러 우리의 믿음을 좀 먹는다.
영적권세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같은 자유는 쓸데없이 공격적이 되지 않도록 지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19-20)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풍습을
그가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풍습에 어느 정도 맞추려고 하였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인정을 받기 원해서가 아니요 그가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구원하기 원했던 때문이었다. 우리 생활양식에 있어서 타협이 요구될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도덕성에 있어서나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이런 타협은 두려움이나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좋은 것은 가장 좋은 것의 최대의 적이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껴 영적으로 길 잃은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강요하는 복음, 교회, 사역 또 기독교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종교가 있다. 만약 축복과 위로를 쫓는 것이 우리의 주된 동기라면 우리는 영원히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진리 가운데 행하려 한다면 롬12:1의 실제적인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즉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현명한 속담이 말하듯이 "역사를 망각하는 자들은 이를 되풀이 하게끔 되어 있다" 이제까지 하나님 역사의 새로운 운동마다 결국에는 지난 날에 지은
것과 똑같은 과오에 빠지곤 했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들이 걸어 온 지난 날의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데도 교회가 그 자신의
역사로 부터 얻은 교훈을 어쩌면 그토록 망각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교회가 역사를 보는 안목이 부족했기에 치명적인 과오를 거듭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순환은 주님이 오시기 전에 모든 것을 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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