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마치신 일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에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3:11-13).

예수님이 터가 되시며 또 참된 의미에서 전체의 집도 되신다. 왜냐하면 만물이 그 안에서 통일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또한 터와 머릿돌이 되신다. 이것이 사도들의 메시지였다. 오늘날 "사도적"이라고 하는 것 중 상당수가 단지 형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벌써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참 사도적 메시지는 거의 또는 전혀 형식을 강조하지 않았다. 사도들이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일들, 가령 장로와 집사들을 임명하는 일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형식이 아니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애쓴 것은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 교회가 어떤 형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있어왔던 갱신운동은 모두 결국 그저 교리와 형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락되곤 했었다. 참된 사도적 신앙은 생명이신 주님을 강조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계시된 주님으로 만족해 왔지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거의 2천년 동안 주님은 이 때를 위해 주님의 교회가 준비되도록 일하고 계신다. 사탄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뜻 하나 하나를 속임수에 의해 곁길로 빠지게 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제껏 가장 효과를 나타낸 사탄의 전략 중의 하나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예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탄은 성공적으로 교회가 하나님 자신을 예배하는 대신 교회, 성경, 심지어 예배의 의식마저 예배하도록 해왔다. 이제껏 사탄이 가장 효과를 거두어 온 미혹의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 계신 주님 대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누구이냐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거룩하신 창조주 대신 피조물인 우리 자신을 예배하는데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교회에 가득하며 우리의 가르침 중 가르침 중 상당한 부분에 스며들어 있는 자기중심과 자기경배의 미혹이 힘을 꺾여 부서질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곧 주님의 성전에 들어 오시며 모든 면류관이 주님의 발 앞에 던져질 것이다. 주님의 위임없이 감히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이들의 정체가 분명하게 들어날 것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 자기를 낮춘 이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보내질 것이다. 현재 주님께서 편성되고 있는 이 추수군대는 일찌기 볼 수 있거나 꿈꿀 수 있던 그 무엇보다도 위대할 것이나 그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 하지 아니하고 지휘하시는 왕을 돋보이게 할 것이다.

이 추수기간 동안 인간의 권세와 기관들은 촛밀 녹듯이 녹아 사라질 것이다. 이같은 일은 이 기간중 대중이 누군가 권세를 잡을 사람을 찾고 있을 때 하나의 경고로 닥칠 것이다. 제도적이며 정치적인 수단으로 권력을 구하도록 신자들을 격려하는 교리들이 나올 것이다. 사탄은 이 교리를 사용하여 자기 본위와 자기를 높이는 이들을 끌어 들일 것이다. 그같은 속셈을 가진 권세는 주님 자신의 백성들조차 현재 알고 있는 것과 아주 다르다. 우리는 다스릴려고 애써서는 안되며 섬기려고 애써야 한다. 이로서 주님의 권세는 흘러서 화평으로 질서를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다가오고 있는 날에 가장 큰 생명을 교회에 가져올 사역자 중 얼마는 지난날 큰 실패를 저지른 이들일 것이다. 성서상에도 완전히 낭패하여 모든 인간의 노력과 힘의 막바지에 다다른 후에야 주님의 쓰임을 받게 됐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일들이다. 높임을 받기 전 겸손이 오는 것이다. 교회사에서 교부들과 사역자들은 그 누구라도 그처럼 실패와 연단으로 깨어지지 않은 자는 없었다. 주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상처입은 자들과 마음에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켜 주님께 회복시켜 강하게 쓰실 것이다. 이런 실패로 인한 겸손함이 주님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더 많은 영적권세를 주시도록 한다.

현대교회는 초대교회의 공동체의 정신과 교회생활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죽은 형식으로 끝나 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어떤 특정한 식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움직이고 계셨던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그의 백성들은 모이기를 원하며 어떤 압력없이 그렇게 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진리가 삶이 된다. 주님이 움직이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모든 형식과 원칙들과 사람을 동원시키는 노력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기독교는 진리와 원칙들의 체계가 아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갖는 관계성이다. 관계성이 이루어지기 전에 만들어진 진리와 원칙들은 여전히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주님과 관계성이 이룩되었을 때만 안전하게 진리와 원칙들을 시행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리와 제도를 바로잡았다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나 그러나 참된 종은 그들의 열매를 보고 알 수가 있다. 바르지만 교만한 사람보다 잘못된 겸손한 사람이 낫다. 우리의 목표는 교리를 갖는 것이지만 주님이 하신 것처럼 실수를 범하는 자들도 사랑할 수 있는 겸손과 유동성과 관대한 영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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