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게 쓰임받는 도구가 되자

 

본문 : 창세기 1 : 31

제목 : 귀하게 쓰임받는 도구가 되자

최근 기독교 영성이 강조되고 영성훈련과 영성신학의 정립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1000만이 넘는 성도가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고 사랑의 실천과 교회의 책임성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불신자의 구별이 어려운 이 때에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보고 예수님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인간을 지으시고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옴으로 그 좋았던 관계가 깨지고 결국 하나님은 인간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근심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이 저를 보시고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니면 한탄하시고 근심하실까 그래서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며 실천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면 단호히 거절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우리 모두 예수님이 필요로 할 때마다 귀하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시길 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에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말합니다. 연습의 헬라어 귐나제는 벌거벗고 운동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적극적으로 훈련하라는 의미입니다. 연습은 계속 끊임없이 반복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만 된다 싶으면 연습을 중단하고 교만해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열심히 연습해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탄식할 터인데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힘으로 내 지식과 경험으로 절대 안됩니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를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에 경건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믿는다 - 라틴어 credo는 본래 우리의 인격의 전인적인 중심인 심장을 특정한 대상에게 고정시켜 그를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사도신경에서 내가 믿사오며 하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심장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고 그 분만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한 것은 자기의 심장을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고 살아간다는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다시 산 자입니다. 우리의 심장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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