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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연애
 

 

동성애는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의 감정과 성적 친밀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는 이성애나 양성애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수행해 온 섹슈얼리티의 한 형태로 그 역사 또한 장구하다. 섹슈얼리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가진 성적 욕망(erotic desire)과 정서를 말한다. 성적 욕망과 이와 관련된 심리, 판타지, 매력, 끌림 등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둘째로 섹슈얼리티는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과 관련된 자기규정이나 성적인 삶의 방식을 포함한다.
셋째는 성적 지위(sexual status)로, 이는 특정한 성적 정체성, 관행, 욕망에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지위, 즉 성과 관련된 위계와 차별화된 지위를 의미한다.
이성애는 이성에게 성적 욕망과 정서를 갖는다는 뜻이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인지하면서 자신의 성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동성애는 동성에게 정서적 끌림과 성적 친밀감을 갖는 것, 양성애는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에게 정서적 끌림과 성적 친밀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등 성적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생애 경로에서 성적 지향성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랑, 성적 욕망, 판타지 등에 대해 매우 확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나 이성애자인 사람이 평생 이성애만 실천한다는 전제 모두 인간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획득하는 다양한 과정을 포괄하지 못한다

미국의 201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약 1100만이나 되는 동성부부들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 공식적인 통계가 이 정도니 실제로는 더 많은 숫자가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마침내 미국 연방 대법원은 6월 26일 동성 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이 문제는 이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기독교 서클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대다수 주에서는 공립학교 교과서 안의 가족에 관한 내용 중 "결혼이란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수정하여 교육하고 있다.

미국 침례교회, 전미복음주의협회, 남침례교, 연합감리교 등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으나 반면 성공회, 미국루터교, 미국장로교의 경우는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있다. 이제 사회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이로 인해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방주의 종교인들이 최근 모여 작성한 선언문에는 동성 연애자들도 일반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져야 하며 이는 교회생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전세계적으로 동성애자의 비율이 전인구의 10%를 초과하는 국가와 도시가 생겨났고, 성지 이스라엘조차도 세계 3위권에 들어간다. 전세계인구의 2-3% 또는 최대 3-8% 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74억 인구 중 2.2억이 동성애자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죄라고 분명히 명시되고 있는 동성연애가 이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교회까지 물들이고 있다. 이제는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동성연애가 죄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으로 용납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가르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성경의 진리를 억누르게 되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을 하고 이들을 부부라고 부르며 여느 남녀 커플과 똑같이 대해 주어야만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앞장서서 교계의 진보좌파는 인권과 평등과 이해라는 명목으로 이를 눈감아 주고 오히려 나서서 동조하고 있다.  

 
 
성경적 세계관
 

 

성경말씀을 통해서 동성연애에 대해 조명해 보기로 한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결혼을 말씀하셨고 정의하셨다. 그것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임을 나타낸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께서는 아담(남자)와 하와(여자)를 창조하셨지 결코 아담(남자)과 또 다른 한 남자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남녀 모두 를 위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특정한 창조원리 및 역할고 규칙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킬 때에 잘못된 근본원리를 파괴시키는 법이나 제도 등에 대해 반대해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연애는 반 창조 원리적이며 성경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20:13).

신약성경에서도 사도바울은 고린도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 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4-27).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오히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 고등동물들에 흔히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물의 세계를 한번 잘 관찰해 보라고 역설하고 있다.
세속적 가치관이 동성연애를 어떻게 이야기 하든지 하나님은 동일하게 멸망받을 죄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우리 주위에 있다면 그들에게 먼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분명한 죄악이며,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죄사함의 용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동성연애를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 주고, 그들이 계속 그러한 죄악 속에서 살도록 방치해 둔다면 이것이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기독교의 제언
 

 

법은 보다 많은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간다운 삶의 질을 높이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의 수단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이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정상성에서 거리가 먼 행위까지도 소수의 인권보호 라는 표현으로 법적 성문화하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 운영하면 소수자의 인권과 복지권도 중요하지만 그러인해 절대 다수의 인권과 행복추구권, 복지권이 훼손될 개연성이 있음을 간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생명의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이며,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축복하신 섭리에 대한 거역이며, 우주만물과 다르게 특별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존엄에 대한 훼손이기 때문이다.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혼과 육체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의 성적 결점도 또한 창조주의 거룩한 영역이다. 성전환자에 대한 법적 변경행위는 법적 안정성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사회구성원과 국민들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에서 현저히 벗어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고 앞으로 반사회적 행위자까지도 법적으로 보호해 달라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의 질서와 생명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사회가 급변하고 가치관의 혼란과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지만 반대로 다양한 목소리로 극소수의 주장을 수용하다 보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정상적인 삶의 보편적 원리가 파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창조의 질서, 자녀 생산의 원리, 사회윤리와 도덕 등이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소수의 인권과 행복권을 말하지만 성전환수술을 인정하고 호적을 바꾼다고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 다수의 정체성과 그러한 질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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