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성경학자들은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불평으로 감정의 강도를 드높인가. 극악한 남성 음모자들로 하여금 가족, 교회, 사회를
파괴하도록 한 그 음모에 찬 이론은 정경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였다. 정통 정경을 결정지은 자들은 교회의 교부들이었다.
정통 성경의 배후에 있는 남성들의 권력욕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통하여 사회를 통제하려고 했던 욕구였다. 그래서 여성은
이제 패배자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스트 신학이 나타나 새로운 정경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이다.
포스트 모던시대에서 경험을 최상의 지위에 두는 것은 페미니즘에만 독특하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길을 인도한다고 공언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에 대한 편견의 표현이 아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페미니스트들은 동일한 주장을 한다.
페미니스트 성경주석의 프로그램은.. 현대 성경연구의 가장 중요한 양상의 하나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종교적 사고에 있어서 혁명을
가져왔다.
이제 페미니스트들은 성경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한다. 그들은 성경적인 전통의 여러 양상들을 교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이교적 헬라의 것이든 이단적 영지주의의 것이든간에 상관하지 않고 어떤 텍스트도 거부하지 않고 인용하며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성 해방주의자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정사와 권세들로서의 가부장제에 대한 그녀들의 해석을 지지해주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해방의 해석학은 지도적 이론가인 피오렌자가 성경의 텍스트에 각인되어 있는 가부장적 정치학의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의심의 해석학을 제안했다. 성경은 문법적으로 남성적인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성경의 선언에 대한 비평적
평가의 해석학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 해석학은 성경의 텍스트의 본문이 가부장제적인 가치들을 주입시키기 위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미래의 해방의 비젼을 제시하기 위해 읽혀져야 하는 것인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해석법이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관점 해석학이다.
하와는 조작되었다. 창세기1-3장에 대한 현대의 페미니스트의 반응은 분노, 불신, 의심 중의 한 가지이다.
곧 못마땅해하는 태도이며 여성을 중심에 두고 남성과 남성적인 성경의 하나님을 동산에서 몰아내는 상상의 독서이다. 그 의심이 이유
를 보라 :
아버지 하나님의 신화는 지배와 의존의 세계를 보증하였다. 창세기의 창조설화에 삽입된 가부장제는 보편적인 종교이다. 무엇으로 그
신호가 지속되는 것을 설명할 것인가. 무엇으로 그 신화가 채택될 것인가. 당시에는 다른 신화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창세기 신화는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일신교와 가부장제의 합법화를 확립하였다.
하나님 소송이 선언되었다.
성경의 텍스트에서 하나님으로 묘사된 존재가 실제로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우상의 한 형태이다. 하나님이라는 인물이 다른 모든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비평적 조사를 받지 않는다면, 사실 우리는 그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하나님은 명령하려고 하는 강한 경향을 지녔으며 이분법적인 편견을 지닌.. 이상한 인물이다. 이 창조주 하나님은
명백히 전지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이 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의 근원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배와 전체주의적
권력을 향한 악한 욕망을 최고로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일원론자들의 세련된 하나님이 아니다.
하와는 지식을 향한 강렬한 목마름의 소유자였다.
하와는 선과 악 사이의 구분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연스런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녀는 생존과 미와 지혜를 위해 손을 뻗었을 뿐이다.
그녀는 주도권과 용기를 지닌 인물로 등장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경계를 시험해 보고 자신의 선택의 경우들을 가늠해 보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녀는 그녀을 지배하고 있다는 자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내린 용기있는 인물이었다.
하와의 결정은 인간독립의 최초의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자유의지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하와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낙원에 안주한 자신이 유치한 존재를 초월하는 실재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결정은 인간성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하와와 뱀은 영웅적으로 악당 여호와를 대항하였다. 하와는 유혹하는 뱀과 더불어 그녀는 문화를 도래시킨 장본인 것이다.
뱀은 악하지 않다. 그것은 선과 악을 모두 제안하는 유혹자 하나님의 얼굴의 다른 면이다. 이 심오한 사실을 하나님은 거부한다.
뱀과 하나님은 같은 지위에 공유한다. 둘 다 교활하며, 정보를 감추고 있다. 둘다 협동으로 인간을 속이고 있었다. 뱀은 하나님의
조력자로 해석을 한다. 뱀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변화시키며 현재의 상태를 전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의 성경 해석학은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성서신학이다.
최근 페미니스트 사색가들은 영지주의가 성과 가부장적인 문명에 적용되면 혁명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남성적 신을 전복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시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평등주의적이며 비 가부장제도인
환상은 서구에서 신학, 사회학, 정치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협약을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성
성은 한 문명이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 준다. 어느 사이에 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진보적 일원론과 장단을 맞추어 억압받는 자들에게
해방을, 착취당하는 자들에게는 정의를, 그리고 온 땅에 평화를 약속하면서 우리 사회를 향해 유혹하며 손짓하고 있다.
성과 종교는 가공할 만한 2인조를 이룬다. 새로운 성으로서 페미니즘은 종교와 지구를 변화시킬 것이다.
현대교회의 본질은 가부장제도의 해방이다. 사회정의를 위한 계급투쟁에 있어서 제거되어야 한다. 가부장제도은 심각하게 잘못된
사회 체계이며 수천만의 사람들의 불행을 야기해 왔으며, 여전히 인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강제적인 이성애는 바로 가부장제를 유지시켜 주는 골격이다. 그러므러 동성애는 그 골격을 깨뜨릴 것이다. 그리고 한 여성이
그가 자율적으로 역할을 다할 때 레즈비언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여성의 자율이란 다름아닌 여성의 해방이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남성 중심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여성 혐오의 죄악으로 지적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적 계시의 빛 아래에서 가부장제를 개혁할 수 없다. 오로지 그것은 제거할 수 있을 뿐이다.
평등주의가 자율적인 개인주의로 가는 첫걸음이 되는 것은 성적 차이의 상대화가 성의 혼동으로 가는 첫 단계와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