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숭배 혼합주의 영지주의 자유주의 뉴에이지 천주교 프리메이슨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사의 한 부분인 영지주의 역사는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철저히 현대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가 세속적 자유주의와 기독교적 자유주의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2세기에도 역시 세속적 영지주의와 기독교적 영지주의가 허용되었던 것이다.

기독교 이전 시기에 지중해 세계의 복잡하게 전개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거대한 흐름은 고대 영지주의의 형태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이교적 영성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이스 문화를 그의 제국의 동양 변두리에까지 전파시키던 BC 4세기에 동양과 서양이 만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만남에서 그리이스의 합리적 문화는 동양의 거대 종교들인 힌두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바벨론 점성술,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 숭배, 정통과 신비주의와 배교 사상이 섞인 유대주의 등에 의해 상당히 수정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전통들과의 혼합은 소위 헬레니즘 시대(BC 4세기 - AD 4세기)의 지적 종교적 혼합주의를 산출시켰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결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혈과 육인 인간들은 그것이 그들의 사회적 조건들을 변화시켜 준다고 약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뉴에이지가 정통 기독교와 세속적 인본주의를 시대적 도전에 부적절하다고 싫증을 내고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 역시 이교주의와 정통 기독교 모두를 비판하였다. 사회학적 분석에 따르면 정통 종교와 관계를 끊어버린 신앙 의 뿌리가 없고 싫증나 버린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영지주의 사상은 가난한 민중들과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페미니즘 지지자들에게 개인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는 새로운 영성으로 집착하게 만들었다.

원래 영지주의는 기독교적 형태를 띠기 이전에 신비종교들 안에서 배양되었다. 그 신비종교들은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에게, 영적 이교 주의의 부흥을 제시하였다. 신비종교들은 비밀스런 단체들로서 하나님 또는 여신에 대한 헌신을 통해 영지(gnosis) 혹은 영적 깨달음을 제공하게 되었다. 비록 헬라어 'gnosis'가 모든 종류의 지식을 의미하긴 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그것은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입교 의식을 통한 신비적 능력의 경험, 그리고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신적 자아의 체험을 의미한다.

영지주의는 AD 2세기에 이르러 호소력있는 종교가 되었다. 그때는 기독교 사상가들(말시온, 바실리데스 등)이 그들의 신앙을 보다 구미에 맞게 하기 위한 재해석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신앙을 당대의 철학으로서 재해석하고, 그러한 혼합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참된 형태라고 주장 하였다. 거기에 속지 않은 교부들은 영지주의가 이교주의의 기독교화된 형태임을 간파하였다.

현대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며 또한 어디서든 진리가 발견된다면 그것을 따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진리의 규범이 아니며 인간 이성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자유주의는 성경을 다른 고대의 문서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룬다. 그들은 모든 간접적 증언과 모든 전통에 우선시하며 단지 자기 자신의 경험만이 진리에 대한 궁극적 표준을 제공한 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종종 사상과 학파와 지적인 열중도에 있어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경험이야말로 궁극적인 규범 이기 때문에 다양성은 자연스런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양성 만으로는 혼돈에 이를 뿐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다양성은 인간의 영성으로부터 싹트며, 그리고 결속은 '신들'사이에서 존재한다. 종교와 경험의 다양성은 공유된 인간 경험을 표명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출처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데이터들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의미에서 혼합주의인 것이다.

정통교회는 사도적 연속성과 공도의 신조, 그리고 공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엄격한 신앙을 사수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개인주의적 창조성의 주연에 참석하였다. AD 1세기 경에, 동양 신비종교의 신들과 여신들(이시스, 오시리스, 미드라스 등)은 고전적인 서구 헬라의 신화적 신들과 로마의 만신전의 신들과 결합하여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한 하나의 혼합주의를 산출하였다. 이러한 종교적인 소란과 그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낳은 것이 바로 영지주의이다.  

서기 300년께 콥트어로 파피루스에 씌어진 영지주의 문서인 유다복음서는 1970년대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됐다.

 
 
 
영지주의 일원론
 

 

동성애와 낙태를 합법화하는 세대의 다양한 주제들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핵심이 있다. 그것은 다양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이교적 문화 속에는 종교적인 이교주의(paganism)로서 땅과 여신에 대한 숭배라고 하는 이념적 통일성이 감추어져 있다. 사도바울은 이 영성을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는 것이라고 묘사하였다(롬1:25).
그러나 일원론(monism)으로 알려진 이교주의의 영성과 내적인 통일성을 간파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일원론이란 모노(mono)라고 하는 뜻으로 '하나'를 의미한다.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서 일원론은 우리 시대의 교회를 점유하려고 한다. 일부는 세속적이며 일부는 기독교적인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지구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적인 운동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다음의 다섯 요소들은 일원론의 형태를 요약해 준다.

1. 모두는 하나이고 하나는 모두이다.
이것은 일원론의 본질이다. 우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서로 연관있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이다. 신은 우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 자체가 우주이다. 기독교의 '창조주, 피조물'의 구분은 제거되었다. 일원론의 큰 '0'은 하나의 원이다.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 원 안에 있다. 고대의 상징이었던 원이 마법과 힌두교 의식과, 여신 숭배 등에서 재등장하였다. 심지어 '세계 종교 회의'의 상징도 원이었다.
이교주의는 관용과 인권이라는 감상적이고도 매혹적인 색상의 의복을 입고서 점차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성공하는 것은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새로운 영성'의 궁극적인 원천은 이교주의이기 때문이다.

2. 인류는 하나이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인류는 '신적 단일성의 현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 우주적 에너지의 응고체이다. 인간이 신성하고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영적 발견을 위해 분주한 탐구를 하게끔 한다. 신비주의가 진정한 영성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신성의 현현으로서 각 개인이 자아는 바로 진리의 원천이다. 관용과 상대성은 필수적인데, 이는 모든 사람의 진리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악에 대하여 우월한 선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여 자기 자신과 자유, 그리고 힘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모든 종교는 하나이다.
이러한 에너지와 신성과 진리의 거대한 확장 속에서는 어떤 종교도 배타적인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정통 기독교는 이러한 용서할 수없는 죄를 어김없이 범하기 때문에 지구의 종교적,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데 주요한 방해물로 취급받는다. 종교들은 반드시 하나의 전지구적인 , 연합된 혼합주의로 섞여야만 한다. 사실 세계의 종교적 다양성의 표면 아래에서 여러 신조들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며, 영적인 경험들은 동일한 신비적 실재와의 연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종교 다원주의를 말하고 있다.

4. 하나의 문제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가장 큰 문제는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진리와 오류, 하나님과 사탄, 남성과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인간과 동물, 이교와 기독교, 합리와 불합리 등을 구분 지음으로서 실재를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분리시켜 놓는 것이다. 일원론자들은 그러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전형적인 구분이 인류를 마비시킴으로서 인간이 전체에 속하였다는 것을 더 이상 지각할 수 없도록 영적 기억상실증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한다. 악이란 초월적인 창조주에 대항한 비극적인 도덕적 반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망각이다.

5. 탈출을 위한 유일한 수단.
직관과 명상을 통한 영적 지각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한 직관은 무한한 원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바라보는 비합리적, 신비적 경험을 통해 온다. 자신의 무한한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자아는 필연적인 지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 경험은 명상이나 약물을 통하여 발생한다. 그러한 명상은 올바로 수행되기만 하면, '정신, 영혼'으로 하여금 육체의 제한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성하며 전체와 연합되어 있는 자아에 대한 지식의 경험 속에서 자신과 지구의 구속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경험은 창조주의 계획과 대치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해로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해방과 자유의 느낌을 가져다 주는 '허상의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신이 모든 생각을 비움으로서 정신의 물질에 대한 승리가 일어나는 순간에 인간은 자신의 신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의한 구원은 여기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가지지 못한다. 각자는 각자의 구원자인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의 골격과 결합한 이 동양적인 일원론은 기독교 유신론 또는 그것이 파생시킨 문명과 직접적으로 대치된다. 여기에는 중립이란 없다는 것이다.  

 
 
 
영지주의 영성
 

 

죽음은 마지막 원수가 아니다. 그것은 영지주의자들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다. 즉 죽음은 물질에 대한 영의 최종적 승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낸 사악한 작품을 최종적으로 끝장내 버리는 것이다. 죽음은 육신이라고 하는 속박의 힘을 깨뜨리고 몸으로부터 분리된 영들이 근본적인 자유로 향하도록 만드는 찬란한 문이다.

당신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영지주의는 지식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운동이다. 물론 모든 사상 체계가 지식을 주장하고 있지만 영지주의 지식은 기술적인 것도, 논리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다. 한 영지주의 서적은 철학, 의학, 수사학, 음악, 논리학 등 혼동으로 이끌 뿐인 헬라의 지식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오로지 보이는 것들에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의 권위의 영역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임수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다운 지식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이며 현대 심리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칼 융은 그 뱀에게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초인간적 특질을 보았으며, 냉혈동물인 뱀의 쏘아보는 눈은 인간의 시야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숭고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경외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았다.

4세기 교부 에피파니우스에 따르면, 보보리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만찬의 풍성한 음식과 포도주가 동반된 미식가적인 애찬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형제와의 애찬식의 순서가 뒤따르는데, 그 순서에서는 결혼한 커플이 따로 흩어저서 그 집단의 다른 멤버들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임신은 창주주의 구조 속에 속박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교의 중단이 수행된다. 남성의 정액은 다음과 같은 기도와 함께 하늘을 향해 사정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먹는 것이다. 만일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그 태아는 낙태되었으며, 태아의 몸 역시 다음과 같은 기도와 함께 먹었던 것이다. "우리는 탐욕스런 지배자에게 조롱을 받지 않을 것이며 형제가 한 실수를 주워담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그들은 "완전한 유월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콘돔을 사용한 성교의 중단을 통해서 무제한적인 인간의 자유라는 한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을 통한 상승의 단계로서 주문을 외는 것은 개인의 신비적 명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지식은 역시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다. 영성의 도전은 광대하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육체의 몸에 갇혀 있으며, 또한 우주 속으로 뻗어가는 최소한 일곱 개의 동심원에 싸여 있다고 간주한다. 각각의 동심원은 대 지배자인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배치된 불법적인 권세와 정사와 능력자들이 위치하고 있는 다양한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영혼은 빛의 존재들에 의해 호위를 받으며 기독교인, 수도사 등 변변찮은 자들이 붙들려 있는 일곱 개의 무서운 영역들을 통과하여 마침내 빛의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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