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숭배 혼합주의 영지주의 자유주의 뉴에이지 천주교 프리메이슨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불사조처럼 다시 출현하였고 옛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추세에 대해 혐의점 만을 찾는 정통주의 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교회에서의 영적인 필요들에 대해 대안을 거의 제공할 수 없었다. 복음이 연합된 세계인에게 기대감 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성교회가 그들이 주장하고 제시하는 평화와 정의에 대한 사회적 협약 만을 제공했을 뿐 어떠한 영적인 능력도 보여 주지 못했다. 또한 기성교회들은 바른 기독교 신앙을 가르칠 정도의 의지나 능력을 잃어버렸으며 그로인해 세속적인 것에 대해서나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체계들과의 영적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진보주의자들이 진보적 현대주의에 대해서 가장 과격한 비판자들이 되었다.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인간 이성의 힘을 믿던 확신은 유혈의 잔인함으로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붕괴로 인해 그것의 4가지 영적 법칙들을 폐지할 수 밖에 없었다. 1) 생물학적인 진화론   2) 실존주의   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4) 마르크스주의 들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붕괴가 정통 기독교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 반드시 좋은 소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지금 이교적 영성이라는 망토를 걸치고 나타났다. 정교분리의 잘못된 잘못 이해된 교리가 기독교를 마비시켜 버렸다.

사신신학으로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무신론적 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의 자유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선지자가 되었다. 루터교회의 목사의 아들인 니체는 진정한 인간의 진보는 한 초인의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 초인은 약골들의 신앙인 기독교를 버리고 '강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을 위한 총체적 자유의 도덕률을 채택한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의 낮아짐과 유약함과 자기 희생의 덕목을 멸시하며 '가치의 재평가'를 주창하였는데, 이는 도덕적 가치들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서 악을 선으로, 선을 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유신론의 최상의 형태는 일신교가 아닌 다신교였다. 그의 낙태 선택의 윤리와 종교적 복수주의로 특정지어지는 우리 시대에 대한 섬뜩한 예언처럼 울리고 있다. 그의 사신신학은 미래에 대하여 다신교의 부활, 즉 신들과 여신들의 부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밝고도 새로운 미래란 동양과 서양의 현대적 만남으로 부터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의식의 변형을 일으켜서 결국 새로운 지구적 의식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유주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은 정통주의가 특정한 위협을 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부풀어있다. 고대의 이교주의적인 영지주의 텍스트들이 신학적으로 소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회의주의자들, 교회의 이탈자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뉴에이지라고 하는 곳에서 종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신학은 종종 사회 운동을 흉내를 낸다. 영지주의의 다양성은 새로운 형식들과 자유로운 표현을 위하여 사회적, 종교적 연구를 반영한다. 영지주의가 기독교화하기 이전에는 그것은 모든 이에게 자유를 약속하는 하나의 사회적 해방 운동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적 영지주의는 기독교인 불만세력들이 그들의 신앙을 해방운동과 일치시켜 재해석하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보다 더 자유적이며 기독교적인 것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현대의 해방운동, 전통적 도덕에 대한 거부, 현대의 개방적인 성의식, 영적 거듭남과 정상 도달에 대한 뉴에이지의 약속, 동양적 수행, 여신 숭배,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정신이 교회로 점차 침투하는 것 등에서 역사는 재현되고 있다.

진보적인 자유주의는 이교의 신앙과 수행들을 기독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도 고대의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이교적 종교들에서 우주적 신비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의 영지주의가 초대 기독교의 대안적이고 진정한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영성
 

 

현대인들의 대다수는 순진하게도 가부장적 구조들을 자기들에게서 제거하고서, 자신에게 좀더 편한 방법으로 신에 대해 다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imagine). 그것은 신화적 사고들의 한 체계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간단한 일이다.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간으로 대체하고, 하늘을 지상으로 끌어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러한 공식에서 우리가 등한시하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곧 영혼을 뺏기 위한 우주적인 시합에서 자신을 감추고 몰래 숨어 들어오는 제3의 선수인 사탄이다. 인간의 마음은 영적으로 선한 자율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그 위에 하나님이 쓰든지 사탄이 쓰든지 해야 하는 하나의 서판이다.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는 거드름을 피우는 야훼를 제3의, 낙관적인 개념으로 대체시킨 것이 아니다. 신비적 지혜의 여신인 이시스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대적한다. 그녀가 제공하는 새로운 영성은 그녀가 예전에 이미 제공한 바 있는 것이다. 그 영성의 지상 중심적인 지혜와 빛의 조명은 아무런 의심도 없는, 영적으로 굶주린 현대인들을 사탄 왕국의 휴게실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사탄)의 목소리이다. 우리의 세계는 거대한 망상의 가장자리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만일 고대 영지주의의 배교가 제공하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의 멋진 신세계는 해방된 인류라고 하는 찬란한 거짓 약속이 제공하는 행복감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걷게 될 것이다.

현대교회의 본질은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정의를 위한 계급 투쟁에 있어서 제거되어야 할 새로운 악한인 이 가부장제도는 다음과 같은 것들과 동일시된다. 정사와 권세와의 싸움에 있어서의 대적, 남성다움의 우상, 아버지의 통치, 불꽃같은 눈과 연기 뿜는 코를 가지고서 가부장제의 사원에서 신성모독의 연기를 분출하고 있는 기계적인 우상, '그 악한 세력이 우리 의식의 심층부에 너무도 깊이 파고 들어와' 등등... 일반적인 포스트모던니즘에서 그러하듯이, 목소리가 클수록 페미니스트의 의식도 더욱 높이 고양되게 마련이다.

이교도들이 가부장적인 창조구조를 거부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가부장제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면서, 이성적 가부장제를 향해 인종주의와 계급주의를 포함하여 대표적인 사회악으로 비난하였다. "인간 성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 성의 왜곡, 신을 지칭하는 언어들의 잘못된 구조들이 인간의 자유와 건강한 관계성들을 저해하고, 그러므로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질 가능성을 방해하여 온 방식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은 다음에야, 우리는 정확한 치료를 희망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일원론적 영성에로의 개종과 성적 풍속, 성 역할, 가족 구조들에 있어서의 주요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인가? 서구 문명의 성 의식은 불과 한 세대만에 해체되어 왔다. 여성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성의 개념들에 있어서의 거대한 변혁을 대변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운동은, 그것의 주요 이론가들에 따르면, "개혁주의 운동이 아니라 혁명적인 운동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효과는 복합적이다. 사회와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재고(re-imagine), 그리고 여성들의 재능을 활용할 창조적인 연구는 환영할 일이며 선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한 성경의 계시와 창조 질서에 따른 성과 그리고 성경적인 성도덕을 사악한 억압의 표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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