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적인 신념은 바로 범신론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즉 이 세상에 편만한 모든 것이 신이며, 명상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을 경험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뉴에지지 사상은 절제되지 않은 낙천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그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길 것이라고 호언하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형이상학적 과학과 고대 바벨론 종교를 혼합한 자신들의 신조가 성공할 것이며, 이는 자연적으로 기독교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가 제시하는 낡은 사상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으므로, 이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독교가 천국을 삶 가운데 바라고 기다리는 대상으로 설명하는 반면, 뉴에이지 사상은 우리가 단지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스러운 새로운 시대를 이룩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러한 능력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영혼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기존의 교리 공부, 교회 출석, 죄의 고백과 같은 방법이 아닌 참 자아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기술을 통하여 인간이 자신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다음과 같이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 자체와 그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신이며, 우리는 신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영적인 명상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하고 진정한 신이 되거나, 신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존재가 신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며, 존재하는 것 가운데 신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우리들을 구원하실 분이 신이 아니라, 싸우고 창조하며 물질을 정신으로 변형시키는 우리들이 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신관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는 구세주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었다. 예수는 단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욕망과 더불어 싸우다가 죽은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수와 같은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말고 자기의 초월적인 힘으로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쟁취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신관과 우주관을 말해 주는 표어는 모든 것이 하나이며, 하나는 모두이다, 모든 것은 신의 일부이다. 이러한 표어는 범신론적인 신관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성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인간성을 신성의 일부분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 존재의 전체성은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환상적인 것이거나 불완전하고 부정적인 기분 또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악은 단순히 인과 법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선과 악을 업보의 균형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 인간은 도덕적 결핍으로서의 악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문제는 초월적인 명상이라든가 요가 또는 참선을 통해 생명력을 얻어 신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의식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신과 일치할 때 비로소 해결되며,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게 될 때 선과 감정이나 의식은 사라지고 자신이 신이 된 상태에 있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범신론과 다를 바 없다.
자아의 본질 자체에서 죽음이란 변함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이생에서 축적한 인간의 지혜는 다음 생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의 순환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말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이다. 하나님은 모두이다. 그리고 모두는 하나님이다 라고 하면서 인간을 신격화시키고 죽음을 부정하기 때문에 악이 원수가 아니라 무지가 원수이다. 인간은 자신이 신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 모르고 있는 것을 깨우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곧 구원인 것이다. 일단 자각하기만 하면 보다 높은 자아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와 인간성이 신적 존재로 귀일하는 것이며, 인격적 변혁을 의미한다.
뉴에이지 신봉자들의 윤리관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관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선하다는 전제에 기초한 철저한 상황 윤리이다. 상황 윤리란 시대, 지역, 민족, 상황 등에 따라 인간의 필요가 변하면 도덕의 기준도 변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서로 반대되는 모든 대립을 파괴할 계획이기 때문에 선과 악의 이원론 문제도 소멸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실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절대적인 악도 진실도 거짓도 구분되지 않고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윤리적 기준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동성애같은 성의 자유가 정당화되고, 낙태와 안락사와 같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행위가 마치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아울러 많은 구루(인도의 영적 지도자)들과
같은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구루들은 공공연하게 많은 여성들로부터 성폭행이나 강간 사건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뉴에이지 사상은 역사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인간 중심의 역사관과 동서양의 두 가지 역사관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즉 서양의 이데올로기를 목표로 한 진보주의적 혹은 진화론적 사관과
동양의 종교에 나타난 윤회 사상에 기인한 순환사관이다. 이 두 유형의 역사관은 하나의 기본적인 전제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격화이다. 그리고 이 신격화를 통해 세계단일정부, 즉 지상의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으로 역사를 이해한다. 위의 두 유형의 역사관은 차이가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 인식의 출발이 인간이고,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책임지며, 인간의 종교적 노력과 이성과 기술 능력으로 역사를 변화시키겠다는 인간 중심의 역사관이 공통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뉴에이지 역사관의 목표는 첫째로 인본주의의 부활이다. 중세의 신본주의에 억눌렸던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 르네상스라면, 물질 문명에 의해 인간을 잃어버린 현대에
인간 스스로 세계의 주인으로 등장하자는 제2의 르네상스가 뉴에이지 운동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은 문명도 기존 종교도 아니며 오직 인간 스스로 잠재된 영적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하다. 특히 뉴에이지 운동이 각종 활동에서 인간 정신력의 신비한 힘들 - 심령술, 초능력, 최면술 - 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 종교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끌려가는 나약한 인간상이나 문명에 가위 눌린 노예 인간의 비참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뛰어난 자기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의 자기 회복과 박애적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 가는 방법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위치에 설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적그리스도를 통한 세계짐승정부 수립에 목표가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지만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인신은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되는 평등 세계 또한 특정한 권력 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권력 기구를 해체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 사람이 주체적으로 주인이 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은 적그리스도 운동이므로 비기독교적이고 사탄적인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