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군정시절의 사회상

오늘날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서구 사회와 마찬가지로 경제제도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 영역의 제도화에 관한 논의를 우리 사회에 적용할 때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경제제도는 다른 사회제도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는 세계화 이전과 마찬가기로 정치제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국 사회의 경우는 80년대 군정 정치제도가 다른 모든 사회제도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제도는 경제제도에는 물론 종교제도와 교육제도 등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에는 경제부문, 종교부문, 교육부문 등에 대한 정치 체계의 지배와 간섭을 철저했던 것이다.

이 당시 경제성장은 정부 주도 하에서 이루어졌다. 기업들은 스스로 경제를 전망하고 관련 시장을 분석하면서 투자를 결정하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부의 지시를 그대로 좇아가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정부 주도적 경제 구조로 인해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이나 경쟁력 강화보다는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 형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교부문도 상당 부분은 정치권에 의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시기에 개신교는 급성장을 하게 되는데 그 성장 배후에는 정치권의 후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의 결정적 증거로 군부 정권 시절에 결성되 조찬기도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찬 기도회는 정권과 개신교계의 연결고리로 작용하였다. 이런 고리를 통해 개신교는 군부 정권의 정통성을 종교적으로 재가해 주었고 개신교는 그 반대급부로 성장에 필요한 조건들을 용이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사회의 모델

시민사회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 혹은 보호에서 벗어나 정부와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권, 환경, 평화, 문화 등과 같은 탈물질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며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통제체제 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과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민사회론에 따르면 사회는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뉠 수가 있다. 정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그것이다. 물론 이런 삼분 모델 이외에 사회를 두 분야, 곧 정부, 시민사회로 구분하는 이분 모델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분 모델에 비해 삼분 모델은 경제의 독자성을 인정함으로서 시민사회의 강점을 가진다.

삼분모델에 근거하여 시민사회의 유형을 세분화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큰 정부 - 작은 시민사회, 큰 시장 - 작은 시민사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서 시민사회는 정부나 시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 하지 못하고 있다.

2) 작은 정부 - 큰 시민사회, 큰 시장 - 작은 시민사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서 시민사회는 정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시장의 지배로부터는 그렇지 못하다.

3) 큰 정부 - 작은 시민사회, 작은 시장 - 큰 시민사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서 시민사회는 시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배 상태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 작은 정부 - 큰 시민사회, 작은 시장 - 큰 시민사회의 유형이다. 이 유형은 시민사회가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한 경우를 가르킨다.

이와같이 제시된 모델의 제도화 개념은 정치제도는 정부로, 경제제도는 경제 혹은 시장으로, 정치와 경제제도 이외의 사회제도들은 시민사회로 번역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상황은 삼분 모델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정부와 시장의 영향력이 막강하여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큰 정부 - 작은 시민사회, 큰 시장 - 작은 시민사회의 유형에 속할 것이다.

교회의 시민운동

한국 기독교는 위에서 설정된 이상적인 사회상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실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한국 기독교는 정부와 시장의 커다란 영향력을 축소시키면서 시민사회를 확대시키기 위해 어떤 실천적 대안을 내 놓아야 하는가?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기독교의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관건적 사항을 시민사회의 대표적 행위자인 NGO와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진다.
한국교회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1) 시민운동의 담당자로서의 교회이다. 이 정의에서 교회는 NGO로 간주된다. 여기서 교회는 하나의 사회조직으로서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따라서 교회는 시민운동을 담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2) 시민운동의 내부적 비판자로서의 교회이다. 이 정의에서 교회는 비판적인 NGO로 규정된다. 시민운동의 목표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있지 정치권력의 인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NGO는 정치권에로의 진입 유혹을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3) 시민운동의 후원자로서의 교회이다. 이 정의에서 교회는 NGO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그것을 지원하는 종교 단체이다. 여기서 교회는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관심을 갖지만 그보다도 개인의 영혼구원에도 더 큰 비중을 둔다.

4) 시민운동의 주도자로서의 교회이다. 이 정의에서 교회는 선도적인 NGO로 규정된다. 위의 세 정의와는 달리 이 네 번째 정의는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판단해도 좋다. 종교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현대 사회는 이미 세속화되어 있다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속화란 사회의 다른 제도들과 문화 및 학문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 곧 사회 전체의 비종교화를 의미한다.

교회 시민운동의 주도자의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은 한국의 다종교 상황을 고려해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사회는 다종교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종교 상황에서 교회가 시민운동의 주도권을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이런 노력은 자칫 종교 간의 마찰을 일으키고 사회의 분열을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교회는 장기적으로 시민운동의 담당자, 내부적 비판자,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시민운동의 담당자 그리고 후원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