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갈등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던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가 붕괴되면서 제한적으로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적 절차들이 도입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정권 아래서 억눌려 왔던 자신의 권리와 요구를 공식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가 속에서 매스컴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제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각종 이익 단체들의 시위 보도를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어떤 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어떤 집단의 주장을 배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정책적 판단과 결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노사 갈등,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종교 갈등, 성 갈등, 빈부 갈등 등 온갖 사회적 갈등들이 존 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기독교 신학이 인간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하나의 진지한 학문적 응답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갈등들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신학은 그동안 나름대로 사회적 갈등들에 성찰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해 오긴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근자에 들어 종교 간의 갈등에만 학문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에서 한국 신학이 종교 갈등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갈등들, 특히 계층 간의 갈등에도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

한국사회는 세계 종교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다종교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다종교 상황이란 한 사회의 단일한 종교가 종교 영역 전체를 지배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이 대등한 세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의 종교 상황을 관찰해 보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무속종교, 신흥 종교 등과 같은 여러 종교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최대의 종교는 불교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종교를 불교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불교 이외에 개신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전통 종교인 유교가 우리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한 사회 안에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다원화와 개인이 자율성에 따른 불가피하고 자연스런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과 교회들은 기독교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다른 종교들의 가치와 의미를 짓밟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타종교에 대해서 가장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종교가 개신교라는 통계조사가 나왔다. 한국 신학계의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런 배타주의적인 경향이 한국사회의 정신적 성숙이나 문화 창달에도 커다란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종교 갈등에 대한 논의들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문제에 관한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는 우리의 상식적 견해와는 다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종교적인 이유만으로는 종교 갈등이 종교 충돌로 발전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발전되기 위해서는 종교 집단끼리 서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갈등 관계에 있는 종교 집단들이 각기 서로 다른 인종, 민족 그리고 계층에 속해 있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는 인종적 갈등은 없다. 또한 종교적 구분선과 계층적 경계선은 일치하지 않는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불교, 개신교, 천주교의 신도들은 대체로 상류층, 중유층, 하류층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다원주의 모델에 근접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그러나 한국사회는 다원주의 모델에 속하지 않는다. 단일한 인종이나 민족이란 특성이 우리 사회에 존재함으로서 어떤 다른 사회보다도 더 강력한 사회 통합을 성취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종교 갈등이 종교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이러한 결론을 고려해 보면 요즘 우리 개신교계의 일부에서 주장되는 종교 집단 간의 충돌은 과장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개신교가 다른 종교들에 대해 적대적이고 정복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해서 이를 토대로 하여 종교 분쟁의 가능성을 제기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