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속에서 몸이 되지 않는 영성은 관념이며 추상이고 허상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 . 생명은 관념과 추상 그리고 허상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와 현실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존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교회는 영성과 역사 영성과 현실 영성의 실천성이 조우하는 작업에 무시해 왔다. 역사의 문제를 제기하고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영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도외시하였다.
심지어는 영성이 흐려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회전체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죄에 무뎌지며 교만과 거짓된 풍요로 비대해져가고 있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역사의 무수한 사건을 외면했으며 그러한 일들을 방치하는 것이 한 개인의 실존적 인생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권세 앞에서 체념과 비굴과 기회주의가 길러지는 것과 부정의한 일을 보고 침묵하며 자신의 개인적 복락에만 관심을 쏟는 존재의 영성은 건전한 것일까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적 양극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불구하고 이런 일에 귀를 막고 있는 이들의 영성은 무엇을 위한 영성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마음과 영성을 지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있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뻔한 일이다. 역사에 무지한 채로 역사의 죄과를 되풀이 하는 이의 영성은 존경받을 만한 것인가 남북간의 적대적 현실을 보고 화해와 협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영성은 제 아무리 묵상이 길고 교회생활이 충실하다 해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영성은 하나님 왕국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기독교 영성은 인간과 우주만물의 아픔에 눈뜨는 일에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는 일이 우리가 목표하는 영성이라면 그분의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았던 그 절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제대로 된 영성일 것이다. 아파하는 존재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은 없다. 자신을 남보다 강하게 할 능력을 사모하고 과시하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은 단연코 사탄의 영일 것이다. 모든 영이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믿지 말라(요일4:1). 사도요한이 한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일체의 모순은 역사와 현실에 대하여 바로 마주하지 않는 기독교 영성에서 비롯되는 것도 적지 않다. 역사가 잘못 갈 때 현실이 모순을 그대로 지속하려 들 때 그것이 한 개인의 실존에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는 현재 가족공동체 해체와 자살과 대량실업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