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정의 영성과 역사 영성과 신학 영성의 실천성 역사와 현실 주기도문영성 주기도문영성2
     
우리의 기도 1
 

4)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우리가 함께 해야하는 나눔의 영성이며 인간이 땅 위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생활필수품으로 물질적 재화 그것의 생산활동으로서 노동의 산물로서 재화의 함께 나눔으로서 누리는 인간다운 삶의 문제이다.

하늘을 독점할 수 없듯이 거대한 땅을 개인 소유로서 독점할 수 없으며 또한 땅에서 나는 모든 생산물을 독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불신앙이며 죄악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살아 갈 최소한도의 주거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필요한 의료시술을 받지 못하고 받고 싶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안에서의 정당한 이윤추구의 경제행위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강변하면서 토지를 독점하고 식량을 독점하고 모든 이윤나는 재화를 독점하거나 상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기복적인 신앙이 아닐 수가 없다.

기독교 영성은 함께 나눔의 영성이다. 현대사회의 결정적인 사회병리을 만들어 내는 원인은 인간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스스로 절제하는 절제의 윤리와 나눔에서 오는 삶의 기쁨을 모두 상실해 버린데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물질주의의 탐욕이라는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영적인 권능을 상실하고 사회에서 비판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도 독점적으로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물질우상주의와 기복신앙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이 기도문은 진실로 절제와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누는 연민의 정 그리하여 사회구조적 부정을 바로잡아 깨끗한 먹거리를 함께 나누는 기쁨의 축제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도록 가르친다. 그것이 곧 함께 나눔의 영성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홀로 깨끗한 것이 아니라 사회악에 공조하고 있음을 겸손히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 2
 

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인간과 인간사이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심각한 죄의 문제를 회복시켜서 교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화해와 재연합의 영성이다.

하나님의 인간 사죄는 무조건적이지만 결코 값싼 은혜의 사죄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사하심은 하나님편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절대 긍휼과 사랑으로 이미 일어났고 선포되고 있지만 그것이 실질적 효력을 발생하려면 인간이 인간의 죄를 용서한다는 통로를 통과 해야만 한다. 즉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불화와 증오심을 가진체 재단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바로 말하면 예배가 진정으로 드려지지 못한다.

죄란 인간공동체를 깨뜨리고 들어오는 이질적인 요소이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관계를 분리와 분열시키는 파괴적인 힘이다. 그것은 화해되고 다시 하나로 재연합되어야 인간은 온전한 건강을 회복하고 치유되고 구원받는다. 죄란 인격적 개인이 범하는 범죄이면서 집단적인 성격을 지닌 구조적 세력이기도 하다. 죄의 현상은 개체적이면서 동시에 전체적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가르치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은 깊은 뜻이 있다.

주기도문의 영성은 인간이란 이렇게 전체적이요 연대성을 지닌 것이므로 개체 안에 전체를 그리고 전체 안에서 개체를 보는 눈을 뜨도록 가르치며 인간과 인간과의 화해와 재연합을 이루도록 가르치며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하시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우리의 기도 3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연약한 우리를 유혹과 악으로 부터 보호하여 지켜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며 이 기도는 전통적인 해석처럼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혹과 악에 저항하는 영성을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 영성은 소극적인 유약한 인간성을 길러내지 않는다. 환도뼈가 위골될 때까지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같은 용사의 신앙인을 길러낸다. 악에게 침묵과 체념과 굴종하는 도피주의자를 길러 내는 것이 아니라 헤롯왕과 빌라도를 향해 진리를 증언함으로써 사랑과 선으로 악을 저항하고 악과 투쟁하신 예수님의 영성을 따르는 것이다. 종교적 순수성이나 복음적 순수성을 빙자하여 현실적인 역사적 정치적 사회악의 세력에 침묵하고 언급을 회피하는 것은 용기가 없는 비겁한 악과의 타협인 것이지 기독교 영성은 아니다.

성서의 선지자들을 보라 그들의 영성은 유혹과 악에 저항하는 영성이지 순수 종교영역으로 퇴각하는 영성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참된 선지자와 신비체험자 안에는 악에게 저항하고 악과 투쟁하는 저항적 영성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체험하여 거듭나고 말씀을 위탁받아 날로 새로워지는 성화적 영성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사회정의와 인간다움을 위해 진리의 저항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자에게는 감옥이 곧 하늘과 맞닿는 은혜의 제단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악에 몸부림치며 깊은 수도원의 동굴 속에서 기도제단을 쌓는 성도는 그 기도가 끝난 후에 다시 산아래로 내려와 삶의 현실 한 복판에서 진리의 증언과 사회봉사 일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항적 영성과 성화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외면과 내면은 결코 분리된 것이거나 갈등관계 속에 있지 않다.

 
 
 
송영과 결론
 

7)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의 송영과 아멘은 예배의식의 형태로서 개인적인 간구와 청원기도의 끝맺음으로 하는 것이 매우 아름답고 지극히 신앙적인 태도이다.
하나님의 왕국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함으로서 신뢰와 확신을 의미하는 아멘을 덧붙임으로서 기독교 영성의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의 영성이요 하나님의 왕국을 열망하는 영성임을 나타낸다.

우리는 주기도문이 단순한 한 기도의 범례가 아니고 복음의 총괄적인 요약이며 예수님과 처음 예수공동체의 가장 핵심적 영성의 집약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속한 교단 교파에 따라 교리신학과 예배의식과 영성수련의 양태는 다양성이 있지만 기독교 영성의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주기도문의 영성의 특징은 그 원형적 규범적인 것으로서 반드시 인정해야 하며 참다운 기독교적 영성체험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되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기도문 영성은 교류의 영성과 공동체의 영성과 저항적 영성과 성화의 영성과 샬롬의 영성 나눔의 영성 화해와 재연합의 영성인 하나님의 왕국을 열망하는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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